메뉴 건너뛰기

25년 전 그해, 잊지 못할 성탄절 풍경

조회 수 6995 추천 수 0 2012.12.20 09:25:00

 

Violin Player Photograph  - Violin Player Fine Art Print

25년 전 그해, 잊지 못할 성탄절 풍경

 


박철(pakchol)

 

 

겨울바람이 쇳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코트 깃을 세우고 허리는 구부정하게 수그리고 종종걸음을 한다. 세밑과 성탄절을 앞둔 서울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이들은 떼를 지어 거리를 활보하고 노인들은 서둘러 귀가를 재촉하고 있었다.

나는 젊은이 축에도 끼지 못하고 광화문 K문고에서 책 구경을 하며 두 시간 족히 시간을 때웠을까. 나는 그 시절 너무 가난한 신학생이어서 책 한 권 마음 놓고 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가세가 잔뜩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나는 숙명처럼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난을 탓할 만한 한 줌의 여유도 없었다.

K문고에서 빈손으로 나와 터덜터덜 광화문 지하도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참으로 처량하고 쓸쓸한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었다. 가느다란 바이올린 소리였다. 지하도 모퉁이에서 한 노인이 낡은 바이올린으로 크리마스 캐롤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그 노인의 바이올린 연주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나도 잠시 후에 그 앞으로 지나 지하도 계단을 이용하여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가려면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나를 강하게 당기는 듯한 느낌이 압박해 오는 것이었다. 무엇엔가 홀린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광화문 지하도의 노 악사의 캐롤을 따라 부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내 온몸에 번져 나갔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성적인 성격으로 숫기 없이 자란 탓에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이 내 발걸음은 다시 광화문 지하도를 향하고 있었다.

여전히 늙은 바이올리니스트는 캐롤을 연주하고 있었다. 누구나 잘 아는 멜로디였다. 나는 바이올린 연주에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내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었고,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다가 들킨 사람처럼 가슴은 쿵쾅거렸다.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떴다. 그러나 내 발걸음은 이내 거리 악사에게로 되돌아 왔다. 그렇게 하기를 몇 차례…. 나는 용기를 내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눈을 지그시 감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내 노래 소리에 고무되었는지 노 악사는 더 큰 동작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는 연인인 듯한 두 남녀가 내 옆에 서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광화문 지하도에는 적어도 70-80명의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로 손을 잡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노인 앞에는 지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노 악사는 신이 나서 더 큰 소리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사람들의 마음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이 헤어질 때는 서로 악수를 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풍경이었다. 지금부터 꼭 25년 전 이야기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계절이 다가오면 그때 일이 생각난다. 20대 청년이었던 내가 50을 넘은 중늙은이가 되었다. 그때처럼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었을까?

올 크리스마스에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단체로 헌혈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교회 청년들과 함께 부산역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노숙자들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팥죽을 대접하기로 했다.

자꾸 25년 전 광화문 지하도에서 있었던 그때 일이 생각난다. 나도 늙어가는 모양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순간은 세월이 지나가면 갈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모양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선언문] 세월호 참사에 대한 KAPC 입장 file

  • 2014-06-06

[월드컵] 벼락 선제골 이근호 (한국 vs. 러시아 1:1) file

  • 2014-06-17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한국과 러시아전 응원 열기가 LA 한인타운 윌셔가에 위치한 라디오코리아 앞 잔디 광장에서도 후근 달아 올랐다. 경기 결과는 1:1로 비겼으나, 그동안 평가전에서의 아쉬운 모습과는 달리 우리 태극전사들의 선전이 한층 돗보이는 한...

[월드컵] 한국 월드컵팀 아쉽지만 잘 싸웠다. file

  • 2014-06-17

'이근호 선제골' 러시아와 1:1 무승부 ▲이근호 선수가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은 후 두 팔을 벌리고 그라운드를 달리며 환호하고 있다.(SBS 월드컵 중계 캡처)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17일(미국 시간) 브라질 쿠이아바의 판타나우 아레...

[월드컵] LA 한인, 월드컵 응원 만큼은 세계 1위 file

  • 2014-06-17

이근호 골 터지자 일제히 함성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17일 오후 3시(미국 시간) 브라질 쿠이아바의 판타나우 아레나에서 열린 러시아와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뒀다. 아쉽게 러시아와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LA 윌셔길 라디오 코...

박종우 선수가 벤치에서 본 부라질 월드컵 후기 file

  • 2014-07-01

▲눈물을 펑펑 쏟는 동생 손홍민을 안아주는 박종호 아래는 이번 월드컵에서 1분도 못 뛴 박종호 선수가 인스타그램에 남김 브라질 월드컵 후기 전문이다. 박종호 선수 화이팅! 축구선수라면 어느 누구나 어렸을 때부터 꿈으로만 생각했었던 월드컵이라는 무대...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기념행사 file

  • 2014-07-07

2014년 7월 4일 미국 238회 독립기념일을 맞아 각 주에서 화려한 불꽃놀이 및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뉴욕 멘해튼에서 벌어진 메이시 불꽃놀이인데 25분 동안 1600발의 불꽃이 발사되면서 맨해튼 및 그 주변 전 지역에 사상 최대의 불꽃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4강 경기 file

  • 2014-07-07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큰 이변은 일어나지 않은 채 남미의 최강팀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유럽의 명문 축구국가인 네덜란드와 독일의 4강전으로 결정됐다. 또한 월드컵 우승 원칙인 '자국 출신 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팀'이 이번 월드컵에서도 계속 이어지게 ...

14일(월)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독일 vs. 아르헨티나 file

  • 2014-07-09

브라질 월드컵은 지난 한달 간의 긴 여정과 우여곡절 끝에 오는 14일(월) 아르헨티나와 독일, 월드컵 사상 최대의 흥행카드라 할 수 있는 유럽과 남미대륙 간의 결승전을 치루게 됐다. 월드컵 4강 경기는 충격속에 조금은 싱겁게 경기가 진행됐다. 브라질과 ...

아주사퍼시픽대학교 file

  • 2014-07-10

LAPD 올림픽경찰서 - 한인타운 내 보행자 사고 '조심' 경고 file

  • 2014-07-10

 LAPD 올림픽경찰서에서는 한인타운 지역에서 올 들어 1200여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이 중 보행자 사고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히면서 기자회견을 열어 보행자 안전사고 방지 대책과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한 해 동안의 사고 분석 결과 전체 사고...

우루과이 호세 무희카 대통령의 연설 file

  • 2014-07-10

우루과이 호세 무희카 대통령의 연설 이곳에 오신 정부 대표와 관계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저를 초청해 주신 브라질 국민들과 지우마 호제프 대통령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저보다 먼저 여기에 서서 연설한 훌륭한 연사들에게도 감...

원하트 소개 - 찬양 문화사역을 위한 기획사 file

  • 2014-07-15

후원소개: 기도/홍보후원 - 원하트의 모든 사역과 연관 사역에 대해서 기도와 홍보로 후원해 주시는 분들께는 이메일로 월간 기도제목, 사역보고, 사역 홍보내용을 보내드립니다. 또한 기도 후원, 스텝 후원, 재정후원 등을 해 주실분은 아래 전화로 문의를 ...

오랫만에 마음이 훈훈해 지는 기사가 있어서 펌 했습니다. file

  • 2014-07-17

자신의 ‘아우디 승용차’를 손수레로 긁은 어린아이와 할머니에게 오히려 “죄송하다”고 사과한 차주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2일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엔 ‘멋이란 타고나는 것인가 봐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신월동시장 인근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롬푸르 성시화운동본부가 출범 file

  • 2014-07-20

말레이시아 쿠알라롬푸르 성시화운동본부가 출범 세계성시화운동본부는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말레이시아 여성선교사회(회장 곽현주 선교사) 컨퍼런스가 열린 겐팅 아와나호텔에서 성시화운동 설명회를 갖고 쿠알라롬푸르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으로염세열 ...

간절한 마음 file

  • 2014-07-22

사랑하는 자식이 생환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처럼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희생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되기를 원한다 ... 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총체적인 비리와 부조리와 무능력함이 드러날 수 있었을까? 이 나라를 ...

애완견 시장이 쑥쑥크고 있다 file

  • 2014-07-22

 그동안 틈새 시장으로 알려졌던 애완견산업이 심상치 않은 성장세를 맞이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2020년에는 애완견산업이 6조원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애완견시장은 소득수준이 올라갈 수록 시장의 크기가 커지...

에프엑스기어, CG업계 최대 전시회 시그래프 3년 연속 참가2014.07.30 09:39:23 file

  • 2014-07-30

에프엑스기어, CG업계 최대 전시회 시그래프 3년 연속 참가 - 3년 연속 단독부스 참가로 업그레이드 된 기술 선보여 - 한국콘텐츠진흥원 공동부스 참가 및 캐나다 BC주 초청 만찬과 리셉션 참가 (2014.7.30) 국내 CG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에프엑스기어(대표 이...

할리우드의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63세) 사망 file

  • 2014-08-11

미국 할리우드 스타 로빈 윌리엄스가 향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14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티뷰론 자택에서 로빈 윌리암스가 숨진채 발견됐다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마린 카운티 경찰국이 밝혔다. 경찰국은 윌리엄스의 사인을 질식사라고 밝...

남가주 밀알선교단 주최, 대통령 및 에드로이드 연방하원 봉사상 file

  • 2014-09-18

대통령 자원봉사상 및 에드로이드 연방하원 봉사상 수여식 남가주 밀알선교단 주최 봉사상 수상식 남가주 밀알선교단(단장 이영선 목사)이 주최한 2014년도 대통령 자원봉상 및 에드로이드 연방하원의원 봉사상 수여식이 9월 13일 오전 11시30분 한길교회(담임...

실크로드에서 온 사진들... file

  • 2014-09-18

Pictures from Silk R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