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회에서 최류탄 터지는 장면이 미국 TV에 방영된 적이 있다.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유독 한국 국회가 잘 싸운다.
요즘도 그게 톱뉴스다. 왜 대화가 안 되나? 어느 나라나 그렇다면 몰라도 한국은
그 부문에선 독보적 존재가 아닐까 싶다. LA한인회도
몇년을 싸우고 있고 교회들도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한국인에겐 싸움이 일상의 일, 어떤 성향처럼까지 보인다. 왜 그럴까? 내 자신의
모습을 통해 깨닫게 된 바로는
약한 자존감 때문이다. 내 안에 나의 존재가치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다보니 맘에 여유가 없고
그 좁은 마음이 싸움에 쉽게 말려드는 거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최근 화장 안한 모습으로 기자회견장에 나왔다는 게
얘깃거리가 됐었다. 화장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건지, 화장에도 매이지 않을 만큼 자유로운 여인인지, 화장 안 해도 자신 있는
얼굴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당당하다는 점이다. 자신만만이다. 그런 자신감은 자존감이 든든치 않고는
결코 가질 수
없다. 대통령이던 남편이 외도의 증거가 확실히 드러났을 때도 그녀는 도리어 남편을 옹호했고
깨질 뻔 했던 가정을 지켜냈다. 남편의
외도마저도 품을 수 있었던 마음의 여유라고 생각한다.
든든한 자존감 덕분이다.
자존감이 약하면 기를 못 편다. 방어적이
되어서 작은 일에도 피해의식을 가지고 남에 대해 비판적이 되기 쉽다.
자존감이 든든할 때에야 남을 받아주고 세워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상대가 싸움을 걸어와도 느긋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모습 아닌가? 자존감이 든든하면 싸움까지 가질 않는다. 약한 자존감이라서 잘 싸우는
거다.
한국 역사의 유산일 수도 있고 남을 많이 의식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 몫을 할 거다. 상호비난이 끊이지 않고
싸움이 잦은
원인을 거기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자존감의 바탕이 뭘까? 힐러리처럼 사람들이 인정하는 학력, 경력이나 명석함과 언변 등의
재능일까?
그런 게 없다면 자존감 대신 열등감이 되는 건가? 뭔가 좀 버젓한 게 없으면 자존감을 못 가지는 게 옳은 건가?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열등감이 서로 어울리나? 아무리 봐도 안 맞는다. 세상 사람들이
인간적인 자랑 늘어놓을 때
하나님 자녀들도 거기에 장단 맞춰야 할 건가? 그건 어떤 믿음인가? 세상 섬기는
믿음인가? 정말로 믿는다면 자존감을 바르게 가져야한다.
세상식이 아니다.
우주 만물 속에 너무도 작고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라면 좋은 거다. 하지만 거기 머물러있을 순 없다.
그런 초라한 존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우리 자존감의 근거로 삼아야한다. 모든 존재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 나를 귀히
여기시는 그 자존감으로 무장하고 있는 한 부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어떤 상황도 넉넉히 극복해낼 수 있다. 하나님 사랑보다 가치
있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한껏 부풀려 놓고 그걸 진짜 모습이라고 스스로 세뇌시켜서 살아가다보니 보잘것없는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 때 자존감이 무너져버린다. 자존감을 자신에게서 찾다가는 반드시 위기가 찾아온다. 외모도 아니고
소유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나 페이스북 접속 수가 자기 가치를 결정하는 게 결코 아니다. 그런 거야말로 뻥이다.
하나님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그
사랑에 온전히 붙들리면 더 이상 세상이나 사람의 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최고의 자존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