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정] 엄마의 애도

조회 수 3537 추천 수 0 2013.12.11 16:13:25

수잔 정.jpg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를 말할 틈이 없었어요. 늘 고맙게 느끼면서도 왜 한마디 말을 하지 못했었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구급차로 혼수상태에서 실려 간 남편은 영영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마흔도 안 된 이 미모의 환자는 그 ‘한마디 말’의 기회를 놓친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이민 와서 이 부부는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도 잘 자라 주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의 일과에 악착스레 전념하였다. 더욱 나은 미래를 위해서다. 그날 아침에도 그녀는 손님과의 약속 때문에 일찍 집을 나섰다. 항상 자상한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 가는 길에 그만 사고가 났다. 불행 중 다행하게 화를 면한 아이들은, 그러나 아빠의 죽음을 목격해야 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살려내지 못한 자신들을 미워하는 듯했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는 울기도 힘들었다. 어떤 순간에는 바람처럼 가버린 남편이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죽자고 따라다니며 연애를 하고 백년을 약속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나를 내버리고 떠나다니…….’ 남편이 눕던 침대 한쪽을 자꾸 손으로 쓸어보는 밤이 많아졌다. 지금도 그의 체온이 느껴지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침이면 찾아갈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비록 일을 하다가 갑자기 멍해지고 초점을 잃는 수는 많지만……. 게다가 기억력도 감퇴되어서 가끔은 본인이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제가 혹시 알쯔하이머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닌가요?”


“아주 드물게 50세 전후에 알쯔하이머 병에 걸리는 환자도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댁의 경우처럼 심한 우울이나 애도 증세 도중에는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감소되는 경우가 많답니다. 우울증세가 나아지면 대부분 회복이 되니까 좀 더 두고 보지요. 그 외에 또 다른 문제가 있으세요?”


“사실은 여덟 살짜리 아들 때문에 걱정입니다. 머리도 좋고, 말도 잘 듣던 아이였는데, 아빠가 간 후에는 통 공부를 못해요. 가만히 제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주의가 산만하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세요. 혹시 ‘주의산만증’이 있는 걸까요?”


“‘주의산만증’ 증세는 대개 일곱 살 이전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증상이 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이 훌륭하게 조절을 하며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하지요 좋은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아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슬픈 일이나 화나는 일로 감정 조절이 힘들어지거나, 주위 환경이 많이 변화되면 이 적응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천성으로 타고 난 ‘주의산만증’ 증세가 더 이상 조절이 안 되고 표출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아이가 집에서는 괜찮은데 학교에서만 문제가 있다면 다른 학습 장애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댁의 아드님처럼 상실이 크고 슬픔에 잠겨 있을 때에는, 우울 증세 때문에도 학업 능력이 떨어지고, 주의산만 증상을 보일 수 있지요. 마치 어머니께서 현재 고생하시는 것처럼!”


“정말 그렇겠군요. 그럼 어떻게 아이를 도와줄 수 있을까요?”


“우선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을 확인시키는 말씀을 하시고, 많이 안아 주시며 시간을 보내세요. 아이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잃었고, 이제 하나 남은 부모인 엄마마저도 잃을까봐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비록 무의식적일지 모르지만……. 우울한 엄마를 보면서 아이들은 자주 죄의식을 느끼거나, 아니면 엄마가 자기를 미워한다는 억측을 한답니다. 이성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아이들의 감정은 위기 상황에서 이렇게 자기 본위로 되니까요.”


“그럴까봐 저는 몰래 방에 들어가서 울고, 아이들에게는 슬픔을 감추었는데요.”


“아이들은 엄마의 숨소리만 듣고도 엄마의 감정을 느낀답니다. 그러니 오히려 터놓고서 슬픔을 얘기하시면 아이들도 자신의 마음을 열 기회가 되지요. 엄마가 감정을 감추면 아이들은 상상으로 부풀려서 더욱 걱정을 하게 됩니다. 남편에게 못했던 사랑의 말을 이제 자주자주 주위 사람들에게 하시면 어떨까요? 무엇보다도 본인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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