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정] 나를 고발한다고요?

조회 수 3152 추천 수 0 2014.03.10 08:25:37

수잔 정.jpg

 

 

내가 정신과 의사를 하는 동안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한 가지가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어린이나 청소년의 부모를 보호 기관에 고발할 때이다. 특히 사랑하는 자녀의 감정이나 행동 문제가 심하기 때문에 이를 치료해주려고 나를 찾아 온 부모님을 법에 따라 보고해야 되는 경우이다.

 

작년에 내가 만난 유태인 어머니와 그 양녀인 13세의 멕시코 출신 소녀가 하나의 예이다.

 

이 양모는 소녀가 태어나기 이전에 산모가 살고 있는 멕시코 마을을 찾아가서 소녀의 탄생을 기다렸단다. 그리고 출산된 아기를 품에 안고 되돌아와서 그 후 온 정성을 기울여서 딸을 길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소녀가 여덟 살 되던 해에 양아버지는 양모와 이혼을 하고 그들 곁을 떠났다.
 
처음에는 자주 찾아와 소녀와 시간을 보내던 양부는 재혼 후 거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열한 살이 되면서 소녀는 더욱 양부를 그리워했고 엄마에게 심한 반항을 시작했다. 걸핏하면 집에서 도망 나가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날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엄마와 몸싸움까지 벌이는 바람에 엄마가 급히 경찰을 부른 적이 세 번이나 되었다고 한다.

 

많은 입양아들의 경우, 생모나 생부의 가족 병력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서 진단에 어려움이 많다. 이 소녀의 경우에도 지능은 높은데 정서의 변화가 극심하고 분노 조절이 힘드며, 충동성이 강하여 엄마와 자주 부딪혔다. 게다가 둘만이 외로이 살며 다른 친척이나 친구들이 중간에서 도와주지도 못하니 서로가 분노의 표적이 되곤 하였다.

 

소녀가 감정 조절에 실패할 때면 엄마도 같이 화를 내다보니 결국은 위험한 몸싸움으로 되어버린다는 엄마의 하소연이었다. 다른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이 유태인 엄마는 소녀의 반항이 단순한 사춘기 변화라고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살을 갈망했고 자신에 대한 심한 열등감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라틴계 인디언의 후예로서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진 소녀와 금발 머리의 백인 엄마와는 너무나 외모의 차이도 컸다.

 

그런데 걱정되는 것은 소녀의 정신과적 증상이 ‘양극성 질환’(bipolar disorder)의 모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언제라도 본인이나 주위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분노와 우울증, 심한 불안 장애, 불면 증상, 머릿속에서 그치지 않고 꼬리를 무는 온갖 생각들, 그러니까 죽을 수밖에 없다는 자살에의 유혹…….

 

우선 상담과 함께 소녀에게 정서 안정제 약물 치료를 시작해 볼 것을 권했다.

 

“약물은 절대로 안 돼요!”라며 엄마가 소리 질렀다.

 

두뇌 안의 화학 물질 불균형 상태 때문에 오는 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정서 안정제에 대해 설명해드리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받아들이는 반면에 청소년 환자 자신들은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다른 또래들과 다르게 본인만 환자로 간주되는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내 힘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며 도움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고통이 컸던 이 소녀가 정서 안정제 약품의 도움을 받아들이기 원하는 반면에 어머니는 정신과 약물에 대한 근거 없는 나쁜 소문들 때문에 겁이 많았다.

 

미성년 환자의 약물치료는 부모의 승인이 필요하다 어머니에게 약물에 대한 공부를 할 것을 권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심해지는 엄마와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까운 친척이나 엄마 친지의 집에서 잠시 기거하도록 권해보았다(병원에 입원하여서 잠시 환경을 바꾸어 주듯이).

 

“가까운 사람이 전혀 없노라”며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주위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관계에서는 학대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

 

“아까 따님이 말했듯이 엄마와 몸싸움을 벌일 때 엄마가 아이의 머리채를 잡았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그럼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경찰을 불렀지요.”

 

“그렇다면 저는 아동보호법에 따라 아동 학대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를 해야 되겠습니다.”

 

화를 내면서 엄마는 소녀를 데리고 사무실을 떠났다.

 

다음 달의 약속 시간이 되었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다른 의사로 바꿔달라고 불평하거나 숫제 나타나지 않는 수가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엄마와 딸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닥터 정 덕분에 제가 여러 가지 배웠답니다. 아동보호국에서 조사나 온 사회사업가가 아이를 위해서 제가 도움 받을 수 있는 곳을 여러 군데 알려주었고 저는 매주 올바른 자녀양육법을 배우고 있답니다. 그분 말씀이 자신들은 덮어놓고 아이를 부모에게서 떼어 놓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대요. 그리고 그분의 충고대로 딸이 약물 치료도 받게 하겠어요.”

 

가끔은 법의 힘이 인간의 감정 조절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 나에게 일깨워 준 귀중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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