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정] 파란 수첩이 약속하는 희망

조회 수 3369 추천 수 0 2014.02.28 08:36:34

수잔 정.jpg

 

 

내가 일하는 건물 화장실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파란색 수첩들이 놓여있다.

 

겉에는 “아프십니까? 도와드릴게요”라는제목과 함께 속에는 가정 폭력을 당할 때 걸 수 있는 전화 번호(1-800-978-3600: 로스앤젤레스 지역), 또는 전국 어디에서나 쓸 수 있는 (1-800-799-7233) 번호가 적혀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안내가 적혀있다.
 
1) 위급할 때에는 본인이 911을 부르거나 아니면 아이들이 911을 돌리는 방법을 미리 알려주십시오.
 
2)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3) 작은 보따리를 싸 놓고 잘 감추어두든지,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두십시오.
 
그 짐 속에는 다음을 물건들을 넣어두십시오. 1) 현금 2) 본인과 아이들의 옷과 칫솔 3) 복용하는 약품 4) 집과 자동차 열쇠 5) 중요한 전화번호 적은 수첩 6) 주요 서류의 복사본(운전 면허증, 출생증명서, 여권, 집 등기서류, 집세 영수증 등) 7)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나 장난감.
 
4) 미리 어디에 피신 할 수 있을지,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을지를 계획해 놓으십시오.
 
읽다보면 마치 옛날 우리가 겪었던 6.25 전쟁 대비를 하는 듯 들리지만 이것은 남편이나 보이프렌드들에게서 폭행을 당하는 여성들을 위한 지침서이다.

 

그리고 한국인 여성들은 아주 많이 폭행의 대상물이 되고 있다. 장가가는 아들들에게 “북어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 번씩 패어야 다루기 쉽다”고 가르친 우리 시어머니들의 잘못도 있다.

 

아니면 어려서부터 걸핏하면 아버지에게 얻어맞는 엄마를 보며 안타깝던 아들이 어른이 되고난 후에 분노를 해결하는 다른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서 아버지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아내를 때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서 군대에서는 상관들에게서 잘못 길들여진 훈육 방법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과 합쳐서 우리의 음주 문화가 개인들의 분노 조절을 좌절시키고만 것도 큰 원인이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술도 못 마신다니…” 쯧쯧 거리며 마치 술을 많이, 그것도 한꺼번에 말술로 마시는 것이 남성다움의 상징인 양 우러러 보는 문화 말이다.

 

술은 전두엽의 기능을 저하시키는 ‘중추신경 저하물질’(central nervous system depressant)이다. 일종의 마취제이다. 전쟁 중에 총상당한 다리를 절단하려면 부상병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서 칼을 들이대는 영화 장면이 무수하지 않았던가.
 
공자의 유교식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많은 한국의 남성들은 웬만한 감정은 밖으로 표현하지 않아야 군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니 가끔 서글프고, 외롭고, 그립고, 클클하고, 미워지는 감정들을 꾸욱 누르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마취제인 술을 마시면, 우선 전두엽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감정의 제압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오랜만에 맛보는 감정의 자유로움 - 억누를 필요가 없이 평시에 아니꼽거나 꼴보기 싫던 사람에게 시원하게 속마음을 뱉어낼 수도 있고, 쭈빗 거리며 수줍던 자세에서 벗어나서 춤과 노래도 신나게 불러 젖힐 수 있다. 그러다가 마취가 심해지고 포유동물에게 모두 있는 번연계의 ‘fight or flight 반응’이 그대로 나타나면, 개나 돼지 또는 호랑이와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어느 집 개가 갑자기 짖어대며 공격 자세를 취할 때에는 그 자리를 빨리 피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경찰이나, 이웃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인간의 겉모습을 하고 있으나, 술에 마취되어서 인간 고유의 전두엽 기능인 감정조절 능력을 잃어버린 남편이나 보이프랜드는 위험한 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911을 부르거나 숨겨 두었던 보따리를 들고서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개가 난동을 부리면 동물 보호국에서 일단 잡아다가 안전한 곳에 가두어 놓고서 병이 있는지를 조사한다. 분노 조절을 못하고 개처럼 행동하는 인간도 911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게 자신이나, 남에게 위험을 초래할 위험을 막기 위해서 72시간 정신적 보호관찰을 요청할 수 있다. 그래서 3일간 정신 병원에 입원한 동안에 어떤 정신적인 병이 있는지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그것이 환자 본인이나, 아이들, 그리고 희생을 숙명처럼 생각하던 아내들이 가정을 지키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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