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정] 간질 환자의 성공 이야기

조회 수 3520 추천 수 0 2014.02.07 01:58:21

수잔 정.jpg

 

 

키가 크고 몸무게가 이백 파운드에 가까운 J가 싱긋이 웃으며 내 사무실에 들어왔다. 보통 때는 걱정이 있어도 마음대로 그의 앞에서 말도 못하는 엄마와 함께 시무룩해서 왔었는데. . .

 

이제 열여덟 살이 되었으니 자신은 법적으로 성인이라 보호자가 필요없단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불쑥 내게 종이 한장을 내민다. 간호 보조사(Certified Nurse Assistant: 약자로 CNA) 자격증이다. 그간 고등학교 졸업에 필요한 학점 때문에 고생하던 J가 아닌가!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간질 발작 증세가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두뇌 성숙과 더불어서 간질 발생 빈도가 차차 줄어들었다. 다른 많은 질병들과 비슷하게 두뇌의 질환도 한 가지 이상의 문제가 동시에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자폐증 환자 중에 주의산만 증세나 정서 불안증이 합병으로 같이 올 수 있듯이.

 

J는 초등학교 삼 학년 때부터 주의집중이 어려웠고 따라서 읽기나 쓰기가 무척 느렸다. 워낙 과묵하고 표정이 거의 없는 J를 보고서 주의산만 증세를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행동 항진(Hyper- Activity) 증세는 없고 단지 주의집중이 힘든(Inattention)경우라,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간질 때문으로 믿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 J는 자신도 친구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공부에 뒤떨어졌고 수줍음이 많은 J에게 다가온 친구들은 이미 마약을 쓰거나 담배를 피웠단다. 어느날 한 친구의 초대로 간 파티에서 그는 권하는 마약을 피웠고 한동안 멈추었었던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

 

간질을 치료하던 그의 의사는 J가 심한 주의산만증이 있어서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그 내용을 이해하거나 또는 글로 표현하는 데에 심한 어려움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고 소아 및 청소년 정신과 의사인 나에게 치료를 의뢰하였었다.

 

주의산만증 환자들은 오랜 동안 친구와의 우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치료받기 이전에는 워낙 정이 많고 남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강한 이들은 시초에 친구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귄 이후에 친구들이 무의식적으로 보내는 행동이나 감정 표현을 금방 깨닫지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무 흥분하여 자기 감정에 휩싸이다 보니 상대방의 몸짓이나 얼굴 표정을 놓쳐버리기 쉽다. 주의집중이 힘들었으니까.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좋은 친구들은 떠난다. 그러니 자신과 비슷하게 주의산만증이 있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고 그래서 쉽사리 마약이나, 문제 행동에 빠져들기 쉬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밖에 . . .

 

초등학교 4-5학년까지는 부모님의 지도에 따라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고분고분하다. 그러나 5-6학년이 지나면서 뇌하수체에서 생성되는 물질들이 송파선을 자극하여 성장 홀몬이 쏟아져 나오고 생식기관을 자극하여 성 홀몬이 분비되면, 아직까지 겉모습은 별로 변하지 않았는데도 말대꾸가 많아지고 정서에 심한 변화가 온다. 바로 이런 상태에서 J가 마약을 쓴 것이 두뇌를 자극했고 다행히 부모님이 정신과 치료를 금방 받아들이셨다.

 

간질이 있는 환자의 주의산만증 치료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보통 주의산만증의 치료에 사용하는 각성제들 즉 콘써타, 아데랄, 바이빈스, 덱세드린, 리탈린 등등은 두뇌를 자극시켜서 간질을 유발시킬 위험이 크다. 따라서 비각성제인 스트라테라나 구안파신, 또는 테넥스를 쓰면서 이 감정이 뒤끓는 마음을 잡아주어야 한다.

 

지금 J의 나이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보다는 또래 친구들이 받아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나 자신이 나의 일을 알아서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이곳 서구에서 아이들에게 계속 주입시키는 가치관이 아닌가!

 

그러나 J의 학업 성적은 거의 D와 F에 머물렀다. 겨우 겨우 고교 삼 학년의 일 학기만 마치고 그는 검정고시와 비슷한 G.E.D. 시험을 쳐서 합격하였다. 한 친구가 고교졸업을 한 후에 CNA자격으로 노인 요양소에서 일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고교 자격증을 땄고 이제 친구와 같은 요양원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나는 문득 참을성 많은 J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간질이나 주의 산만증 한 가지만도 어려운 질병을 치료받는 동안 그녀는 한번도 J에게서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다. 나와 함께 전두엽이 성장하기를 기다렸다.

 

며칠 전 오바마 대통령도 강조했듯이 모든 사람이 대학교 졸업증을 따야 행복하고 좋은 직장을 갖지는 않는다. J처럼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비록 정식 고등학교 졸업장을 포기하고라도 나아갈 수 있는 여유를 다른 부모님들도 갖도록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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