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정] 박지혜 이야기

조회 수 3458 추천 수 0 2014.04.08 04: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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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태양이 떠오르면서, 제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이 싫었어요. 왜냐하면 저의 매일 매일은 죽음과도 같은 우울함의 연속이었으니까요. 또 다른 해가 떠오르고, 새날이 온다는 것이, 그리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다른 날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 저는 너무나 싫었어요. 그래서 제 방 유리 창문을 모두 검은 색으로 막아버렸죠. 마치 동굴처럼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저는 아무 희망도, 기쁨도 느끼지 못한 채, 모든 자신감을 잃고서, 한 발자욱도 방에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태어나서 자라났던 독일의 날씨는 비가 많이 왔고, 어두웠어요. 그것도 저의 우울증에 도움이 안되었겠죠. “


이상은 몇 주전 한인 타운내 교회에서 독주회를 가졌던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박지혜양의 고백이다. 삼백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명기를 마치 신체의 일부인 듯이 자유 자재로 다루면서 맨발로 선채, 온 몸으로 음악을 창조해가는 이 젊고, 아름다운 요정의 과거에 그토록 강한 슬픔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이 상상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잘 알다시키, 우울증은 바깥으로부터의 어떤 자극이나, 상실, 즉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많이 온다. 그러기에 더욱 비참하고, 혼돈되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던가, 학교나 직장의 스트레스가 많을 때, 자신의 실수 때문에 오는 실망감 등등, 원인이 분명한 우울 증세는 그런 대로 핑계가 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해주는 어머니가 있고, 재색이 겸비된 총명한 젊은 예술가에게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이 힘든 병은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오는 쎄로토닌이라는 뇌전파 물질의 불균형 상태 때문인 듯했다. 젊은 여성들에게 많이 분비되는 여성 홀몬, 에스트로젠의 부작용과도 관계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많은 경우, 자신의 양쪽 보모님의 혈연 친족이나 조상 중에 이와 같은 병을 일으키는 유전인자를 소유했을 가능성이 크다.


비교적 정신과에 대한 상식이 않은 미국인들도 자신의 부모나 조부모가 정신적 질환 역사가 있는지를 잘모른다. 왜냐하면 반정도는 우울증은 의지력 부족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 바람에 우울증을 창피하다고 느껴서, 가족들이나, 후손들에게도 비밀로 해두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토록 좋아하던 음악 대학에도 못나가고 바깥 세상과 단절하고 있던 상태로부터 어느 날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의 힘이었다고 한다. 물론 약물 치료, 상담치료도 병행했지만 본인을 구원해준 것은 결국 음악이었단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음악 속에는 죽음으로의 손짓, 영혼이 살아남기 위해 벌리는 투쟁과 고통, 엄마의 숨소리들이 살아서 전해온다. 그러니 맨발로 뛸 수밖에…


멋진 드레스로 강조된 허리선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녀의 고국어 사용 실력은 억양이나 문법면에서 아주 뛰어났다. 교포 2세인 이곳 미국인 2세들에 비교해서 말이다. 미국에서 낳아, 기른 세 아이들을 토요 한글 학교에 데리고 다니느라 법석을 떨었지만 고국어 실력이 떨어져있는 이민 1세 에미의 부끄러움이 앞섰다.


처음에는 정신병 이야기하기가 부끄러웠지만, 저와 비슷한 병으로 고생하시는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해드리고 싶어서 이곳을 찾아왔다는 그녀의 말들이 정신과 의사인 나에게는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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