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성] 전인적 회개의 정신

조회 수 598 추천 수 0 2014.04.05 02: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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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권력은 정치에서 자본으로 흘러간 지 오래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여전히 모든 정치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사회 구조를 바꾼 것은 정치가 아니라 산업이었다. 산업은 정치를 이용해 자본을 축적하였고 자본은 다시 정치를 움직이는 근원적 힘이 되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권력, 자본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장치가 될 뿐만 아니라 정치를 탄압하고 종교를 타락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사회 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본의 흐름을 주도하거나 또는 그 흐름에 편승하여 새로운 자본가가 되려는 실체들이 도덕적 양심을 회복하고 평화와 공동체 번영을 위한 각성에 몸담는 수밖에 없다.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가장 부각시키면서 환호하는 것이 바로 글로벌 마인드이고 글로벌 유통이다. 그 이유는 매우 명확하다. 소비와 생산의 한계에 부딪힌 국내 자본들이 눈을 돌릴 곳은 국경을 넘는 자본을 이용한 글로벌 마케팅이기 때문이다. 과거 정치는 한 국가 내에서 매우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었지만 현대의 정치는 상호주의적 관계가 만들어 낸 거미줄 속에 엮어져있기 때문에 독립적일 수 없다. 정치의 자유와 독립을 저해하는 요소가 자본이다. 잉여생산물의 시대가 만들어낸 것이 정치가 아니던가.

오늘날 개혁 종교는 사회 변혁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다양한 프리즘으로 분석도 하고 계획도 수립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한계 하나가 있다. 자본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거대 자본은 '신' 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자본 우산 아래에 있는 한은 비를 피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종교 역시 개혁은 우산 아래에서 외치는 소리일 뿐이다.

광야에 나타났던 세례요한이 가장 먼저 외친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는 것이었다. 회개하라는 이 말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어떤 것이 될까? 이스라엘이 처한 당시의 상황은 강대국에 압제를 받는 상황이었고 그들이 소망하는 메시야는 정치적 메시야의 이미지가 가장 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였다. 그 나라는 선민인 이스라엘을 온 우주 가운데에서 가장 완벽한 국가로 만들어 줄 약속된 인물이었다. 그 약속된 나라가 가까웠다고 외치는 세례 요한의 첫 외침에는 놀랍게도 이스라엘 국민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중요한 이슈가 하나 먼저 선포되고 있다.

"회개하라"는 이 외침은 이스라엘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필요한 요건이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회개와 더불어 선포되고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현대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회개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잘못된 메시야 사상에 대한 포기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하나님 나라 대망의 오해를 말살시킬 중요한 처방이었다. 그들이 회개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다. 회개에는 심판이 암시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 시대에 심판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회개하지 않는 한 이 심판은 영원히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역사 속에서부터 한 개인의 삶의 현장에서도 심판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문제의 핵심에 놓인 중요한 원인소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자본', 특히 '거대 자본'이 있다. 이 거대한 맘몬이 만들어내는 악의 배설물들을 우리는 다시 먹고 병들어가고 있고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일부터 시작해서 기업이 기업을 사냥하고 실직자를 양산하는가 하면 더러운 권모술수로 한쪽을 짓밟고 일어서야 생존하는 적자생존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사탄의 영은 바로 이 거대한 악의 축을 돌리는 엔진이다. 자본주의는 마약처럼 인간을 중독시켰고 이 제도 하에서 인간 스스로 자아를 내던지고 복종하며 개선의 여지 없이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이고 전적 타락이며 종말인 것이다.

종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인적 회개의 정신을 전파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가게 만드는 믿음 스티커를 발부하느라 진땀을 뺄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세상에 대하여, 다시 말하면 자본, 또는 거대 자본의 유통을 묵인하는 죄를 회개하는 것이고 돌이켜 스스로 악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는 것이니 불의한 일에 동참하지 않고 욕심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자기 확신의 회개가 선행되어야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함께 선포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개인이든 단체든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세상에 대하여 회개하는 마음이 바로 이 세상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 도래를 앞당기는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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