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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어떤 일을 바라는 것이다. 바라는 그것은 항상 미래에 있다. 그 누구도 이미 가진 것이나 이루어진 것을 바라지 않는다. 아직 없거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망은 ‘Not yet’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도 바울은 빌 3:12 이하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이미 얻었다는 것도 아니며, 완전해졌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 예수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상을 받으려고 계속 달려가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만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나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으려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소망하는 사람의 삶의 태도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Not yet’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머물러서 이미 ‘Already’가 되어버린 것을 누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현재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망을 잃어버렸고, 삶의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마치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들처럼 된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마 22:23절 이하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께 한 질문을 했다. 사두개파란 유대교의 한 종파로 제사장들과 그들의 가문으로 구성되었으며, 당시에 바리새파와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천국과 부활을 믿고, 또 그렇게 가르쳐야 했을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앞장서서 천국과 부활을 부정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사두개파는 그 당시 현실에서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있었던 계급이었다. 그들은 로마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 권력을 행사하며 실질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부와 명성이 있었다. 즉 부귀영화가 다 그들의 것이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현재가 제일 좋았다. 현재의 그 상태가 계속 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소망이었고, 그들의 천국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최대의 관심은 현실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천국도 없고, 부활도 없다는 이론을 내세우게 되었다. 천국과 부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호화롭고 탐욕스러운 그들의 삶과 그것을 지키려는 그들의 악착같은 모습은 거짓되고 모순되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좋은 것을 다 누리면서 천국과 부활을 부인했다. 그러나 눈앞의 작은 것을 위해 크고 영원한 것을 상실한 그들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인생들이었다.


이 세상 것만 추구하다가, 소망을 잃은 나머지 부활을 부인했던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유대인의 연혼법을 예로 한 하나의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께 왔다. 예수에게 올가미를 씌워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그리고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고 하셨다. 주님은 자신이 전하는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며 가난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사셨다. 그리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종교생활을 거침없이 책망하셨다.


따라서 사두개인들에게는 예수라는 존재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예수가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원했다. 그들은 잘못된 자기들의 삶을 회개하기보다는, 예수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것만이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질문을 통해 예수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했다.


사람이 자기의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의 이익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대적한다. 그리고 자기에게 불리한 주장이나 이론이나 사상 등을 배격한다. 그리하여 사두개인들은 세상의 부와 권세를 오래오래 차지하고 누리려고 예수님을 제거했지만, 결국 그들 자신들만 망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제한했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자기들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석했다. 성경도 그렇게 했다. 예수님은 잘못된 주장으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권능도 모르니까,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한 것이다.”(마 22:29) 잘못된 생각은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잘못된 생각은 사물을 왜곡되게 보도록 만든다. ‘부활이 없다는 것’, 이것이 그들의 전제였다. 그들은 부활을 생각할 수도 없었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사람이 일단 잘못된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생각을 통해서 보게 되고, 그런 시각은 언제나 잘못될 수밖에 없다.


사두개인들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까지 제한시켰다. 그들은 구약의 책들 중에서 모세 오경만 인정을 했다. 그들은 모세가 가르치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믿지 않았다. 구약의 시편이나, 예언서나, 지혜문학이나, 역사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이 인정한 것은 Torah라고 불리는 율법, 즉 5권의 모세 오경이었다.


그들이 부활을 인정하게 되면, 천국에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현세의 권력과 부와 명예를 멀리해야 했던 것이다. 즉 부활 때문에 현재에 누리고 있는, 모든 좋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현재가 너무 좋았다. 현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한하고, 불리한 것은 다 떼어버렸다. 그리고 그 좁은 신앙을 가지고 천국의 것을 다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현세의 순간적인 행복을 위해 영원한 미래를 포기하고, 부활신앙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죽은 인생이 되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만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짧은 생애를 마치고 사라진 먼지와 같은 존재였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그리고 ‘나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는 산 자의 하나님이다”고 선언하심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그리고 천국과 부활과 영생이 있음도 분명히 하셨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부인함으로 스스로 죽은 자가 되었다. 그 결과 천국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니, 부활이 없다고 믿고 싶었다. 그들은 분명 현실주의자들이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문제가 아닐까? 물론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믿고 고백한다. 그러나 입으로는 그렇게 할지 모르지만, 삶으로는 부활을 부인하고 있다. 현실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빼앗기지 않고 오래도록 누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말씀을 자기들 좋은 대로 해석한다. 기복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보다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물질을 더 좋아한다. 그리하여 신앙의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사두개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한국교회의 과제는 미래에 대한 소망과 소망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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