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정] 인종차별의 배타적 심리

조회 수 3353 추천 수 0 2014.03.31 16:05:21

수잔 정.jpg

 

 

LA에서 살고 있던 이민자들에게 심리적,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준 ‘1992년 난동(riot)’의 배후에는 다른 일들이 있었다.

 

1965년에 일어났던 ‘왓츠 난동(Watts Riot) 중에는 34명의 사상자를 내었으니 53명의 생명을 앗아갔던 ‘911 난동’보다는 아마 피해 규모가 적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비슷한 문제의 싹이 트고 있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871년 10월 24일에 현재의 ‘유니온 기차역(Union Station)’, 올베라 거리(Olvera Street), 시청 광장(Civic Center) 근처 길들을 피로 물들였던 잔혹한 사건이 있었다.

 

캘리포니아가 정식 주(statehood)로 승격되었던 1850년 대에는 히스패닉계가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이후 삼십 년이 안되어서 유럽계 백인 이민자들이 주민의 80%를 차지하였다. 1870년대에 금을 찾아서(Gold Rush) 가주로 몰려온 사람들 중에는 문제투성이의 광부들, 소를 치던 목동들, 아니면 할 일 없이 싸움을 일삼던 부랑자들이 많았다. 법보다는 우선 폭력을 휘두르던 자들이다.

 

미대륙 횡단 열차의 종점이며, 태평양을 건너오는 선박들이 닻을 내리던 샌프란시스코는 그 당시 가주에서 가장 번성하는 도시였다. 십오만 명(150,000)의 시민이 살고 있었고, 당시 미국에서 10번째로 큰 도시였다.

 

이에 반해 LA의 인구는 오천칠백 명(5,700)에 그치는 시골 마을이었다. 자랑거리라고는 아름다운 자연 밖에 없는, 메마르고, 먼지만 날리다가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어 버리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유럽에서 이민 오는 백인들의 숫자가 늘어가면서 이윤이 많은 과일 나무 경작과 가축 목장으로 부를 축적하며 큰 도시로 발전해 나갔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중국인 이민도 늘어났다. 1861년에 삼십 명이던 중국인이 9년 뒤인 1870년에 179명이 되었다. (주민의 3%에 해당되는 숫자이다.) 중국인의 숫자가 많았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점차 ‘반 중국인(Anti-Chinese)’ 정서가 높아졌다. 그러다가 1869~1870년경 LA 일간 신문에 ‘반중국인’ 감정을 노골적으로 비치는 사실들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1870년 10월 24일에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Scott Zesch라는 역사가가 쓴 “China Town War”이라는 책에 있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

 

그날 중국인 두 패가 서로 총질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경찰관 두 명과 용감한 시민 자원자 한 명이 싸움을 말리려다가 그 중 경찰관 한 사람과 시민이 부상을 당하였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자원자였던 백인이 사망을 하였다. 톰슨이라는 이 시민의 사망 소식이, ‘중국인이 백인을 총쏘아 죽였다.’라며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오백여 명의 백인들이 총을 들고서 중국인 마을로 모여들었다. 당시 시민의 10명 중 한 명꼴이다. 경찰관들이 중국인을 보호(?)한다고 했지만 이로부터 127년 후에 일어난 ‘911년’ 때와 비슷하게, 아무 도움도 못 주었었다. 그 날밤 총에 맞거나 끔찍한 린치를 당해 18명이 죽었다. 모두가 중국인이었다.

 

이상의 기사는 현재 포모나 칼 폴리 대학에서 일하는 마이크 우 교수가 LA타임지에 기고한 내용이다. 시민들의 투표에 의해 시의원으로 일했던 유일한 동양인이다. 우 교수는 백여 년 전에 끔찍한 인종차별을 당했던 중국이민자들의 후예이다.

 

나와 다른 것 또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처음에 덮어 놓고 싫어하는 것은 모든 어린이들의 특징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늘 먹던 음식이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편하다. 그래서 생활에 여유가 있는 상류층 사람들은 비싼 돈을 내며 젓가락으로 스시를 먹으러 간다. 다른 문화에 익숙해지려는 성숙한 자세 때문이리라. 피부 색깔 말고도 이들에게는 다른 자랑스러운 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교육 정도가 낮고 별로 자랑거리가 많지 않은 어떤 백인들에게는 다른 색깔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신과 동격의 인간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삶이 너무나 불공평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심술 난 어린 아이들처럼 나와 다른 것은 덮어 놓고 도리질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140년 전의 실수를 또다시 저질렀었고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피 묻은 역사의 교훈을 그러니 계속 주류 사회에 알리고 만일에 이런 난동을 부린 자들에게는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러니 제발 없었던 것처럼(?) ‘911 난동’을 넘어가지 말자. 우리의 후손과 그들이 속한 넓은 사회에 역사의 가르침을 외우게 하자. 그래야 우리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다시는 억울한 희생양이 되는 것을 예방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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