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정] 행복한 정신과 의사

조회 수 3810 추천 수 0 2014.03.25 17:00:03

수잔 정.jpg

 

 

의과 대학교 졸업 후에 나는 원주의대 부속 병원에서 2년간 내과 수련을 받았다. 그리고 스물 일곱 살 되는 해에 미국으로 왔다. 당시 많은 미국인 의사들이 월남전에서 싸우느라 미국내에는 의사가 모자라는 상태였었던 듯하다.

 

우리 한인들 이외에도 인도, 큐바, 캐나다, 영국, 푸에르토리코 등등 나라의 의사들이 고국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 후에 영어와 의료시험에 합격되면 제6종 이민자격이 주어져서 미국내 교육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민 온 지 이년 만에 월남전이 끝나서 내가 계속하려던 내과 레지던트 자리는 이미 자국내 의학도로 채워진 후였다. 반면에 정신과 레지던트 자리는 많았었다. 1965년에 케네디 대통령이 서명해서 발효된 지역사회 정신건강법(community mental health act)에 의해서 심심산골 정신과 병원들에 입원해 있던 많은 정신 분열증 환자들이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을 외래에서 치료하며 지역 사회 안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신건강 보건소(community mental health center)가 도시 곳곳에 세워졌고, 그곳에서 일할 정신과 의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환자들이 가정으로 되돌아 올 수 있도록 도와준 큰 공은 새로 발견된 또라진(Thoragin)이라는 항정신제 약물이었다. 1950년대에 불란서 외과 의사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이 바로 그 약이다(상품명은 또라진이라고 불렸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수술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날 때에는 몸과 마음의 요동이 심하였다. 현재에는 마취약들이 많이 발달되어 그런 일이 드물지만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어떤 환자들은 아우성을 치거나 수술받은 부분을 함부로 다루어서 수술 부위가 위험하였다. 그런데 이 약을 쓰자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잠도 잘 자며, 수술 후의 회복 속도가 빨랐다.

 

당시 미국의 젊은 정신과 의사, 프랭크 에이드가 처음으로 이 약물을 정신과 환자들에게 투약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 나보고 자꾸 죽어버리라고 속삭여요”라며 환청을 듣거나, 아니면 “아래층 남자가 가스관을 통해서 나를 죽이려고 독가스를 보내요”라는 식의 피해망상 증상들이 말끔하게 없어지는 게 아닌가!

 

그뿐이랴. 대화 도중에 남이 말을 끝내면 그 말을 앵무새같이 되풀이하거나, 아예 완전히 대화를 절단해버리고 catatonic 상태에 빠져있던 환자들도 제정신으로 돌아와, 식사와 수면을 정상으로 할 수 있으니, 병원에 입원해있 을 필요가 없어진 때문이다.

 

당시 이런 만성의 정신과 환자들이 입원하여, 차지하고 있던 병상의 수가 미국 병원 전체 입원환자 수의 40%를 차지하고 있었다니, 국가가 정신건강 보건소를 지어서 외래로 통근 치료를 받게 할만도 했으리라.

 

미국에 들어온 첫 해, 뉴욕에서 급한 김에 정해졌던 나의 정신과 수련의 생활은 결국 4년간 계속되었다. 내가 내과 수련의 자리를 찾을 생각을 접었던 큰 이유는 가족이 서로 떨어져서 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서 정신과 수련의 자리는 어느 곳에서나 쉬웠다. 워낙 많은 숫자가 필요했었기에.

 

남편이 마취과 수련을 위해서 뉴올리언스로 가기로 결정된 지 이주일 만에 툴레인 의대의 정신과에서 오라는 연락이 왔었다. 마이드라로 유명한 뉴올리언스에서 수련을 마친 후에, 우리는 미육군 군의관의 자격으로 서울 용산에 위치해있던 121 후송병원에 배속되었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얼마나 많은 미국의 젊은 병사들이 말과 풍속이 다르고 낯선 한국 땅에 떨어져서 불안과 우울증세, 약물 중독 등에 빠지는지 그 현상을 낱낱이 지켜보게 되었다.

 

이들은 상관인 지휘관들의 손에 이끌려서 풀이 죽거나, 그 분노에 날뛰며, 또는 고향 생각에 눈물지으며, 다섯 살짜리 어린이처럼 내 앞에 나타났고 정신 감정을 통해서 나는 이들을 다시 의정부나 다른 지방 주둔지로 보내거나 본국으로 이송시키라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정신과 의사는 만성화된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한다는 옛날의 사고방식과는 너무나 다르게, 불꽃이 튀듯이 긴장되지만 타인의 인생을 한순간에 변화시키는 직업이었다.

 

대부분의 정신병은(특히나 건강하던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군대 내에서의) 초기에 발견하여, 다각적 치료를 하면(정신적, 신체적, 환경적, 영적) 효과가 눈앞에서 보인다.

 

내과 레지던트 시절에 보던 만성의 결핵, 말기의 각종 암 진단이, 후에는 별로 치료방법이 없던 심한 중풍이나 신체 마비 등이 모든 내과 질환을 대표하지 않듯이, 정신 분열증이나 조울증 환자는 정신병 중 오직 일부일 뿐이다.

 

이민 초기에 마지못해 선택했던 전문직, 그러나 40년이 지나고 나서 나는 정신과 의사임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인생이라는 힘든 전투지에 용기를 불어넣고 내보내서 다시 행복을 찾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지금 나의 직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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