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은 꼭 특출해야 하고 번쩍번쩍 빛나야 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쓸모 없어 보여도 남들이 잘 못하는 걸
내가 한다면 그건 일단 재능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들이 부러워하거나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정도가 돼야
재능으로 여긴다. 자기가 재능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실은 없다기보다 있는 재능을 재능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남 잘 돕는 걸 재능이라 하는가? 친절함이나 겸손함, 부지런함, 용기나 인내력을 재능으로 봐주는가? 사람들이
잘 따르거나 사귐성 있는 건 어떤가? 다 칭찬 들을 좋은 것들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재능 아닌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뜻을 따라 나눠주신 '생활을 위한' 재능이다.
재능이 왜 필요한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인가? 사람들은 예술적 재능이나 사업 수완, 명석한 두뇌라든지
남다른 운동신경이나 말주변 등을 유명해지거나 잘 사는 수단으로 여겨서 부러워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다른 뭔가를 주셨을 땐 그저 생업 수단만으로 주신 게 아니다.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 이웃,
나아가 사회와 인류를 위해 주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 삶의 질은 그 삶이 얼마나 남을 위하는 삶인가에
달려있다. 그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달란트 비유의 요지는 재능의 많고 적음이나 좋고 안 좋음이 아니라 주신 것에 얼마나
충실한지 여부다. 별 가치 없고 먹고 사는데 도움 안 될 달란트라 여겨서 땅에 묻어둔 일을 "악하고 게으르다"
하셨다. 먹고 사는 일은 하나님 소관이다. 거기 맘 쓸 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 즉 생활적 재능에
충실하고 있는지에 맘 써야 한다. 재능 묻어둔 사실을 아예 모를 수도 있고, 묻어 놓은 게 재능인 걸 깨닫지
못하기도 쉽다.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어릴 적부터 취미라고 여겨왔던 게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 삶의 즐거움 누리도록 돕는 일을
유독 좋아해서 참 열심이었었다. 그런 일은 계획부터가 신이 난다. 그러다가 결국 그게 직업이 되어서
놀이공원 조성하는 일, 음악공연 기획하는 일들을 했던 것인데, 그보다 더한 보람이 없었다. 지칠 줄 모르던
당시의 열심을 기억한다. 재능으로 여기진 않았지만 그게 나의 참 모습이었던 거다.
이젠 그게 목회사역이다. 실은 이 일도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돕는 일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기쁨,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평안함,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힘을 얻는 삶을
맛보도록 이끌어주는 일이다. 분명 하나님께서 내 안에 두신 소중한 재능이다.
취미라고 여기던 게 지금 삶의 중심 주제이고 사역의 중요한 동력이고 존재의 굵은 줄기인 것을 깨달으며
감사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하나를 지으신 뜻이 얼마나 소중한 지는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남다른 것, 아무리 작아 보여도 그 생활적인 재능에 충실할 때에야 그 뜻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