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성] 정의의 국면

조회 수 3796 추천 수 0 2014.05.21 05:33:59

유영성_베너.jpg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 몇이 청소를 하라고 했는데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 놀다가 선생님한테 발각되어 모두 끌려왔다. 교실에 들이밀고는 선생님은 몽둥이를 찾으러 가셨다.


그 때 나는 교실에 두고 온 체육복을 찾으러 다시 학교로 갔다가 때마침 돌아오신 선생님과 마주쳤다. 당장 교실로 들어가! 라고 하시는 선생님 말씀에 나는 영문도 모르고 교실에 들어갔다.


당시 생각에는 체육복을 다시 가지러 온 게 큰 문제가 되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고 교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던 친구녀석들을 보았을 때는 놈들도 모두 체육복을 다시 가지러 왔다가 걸렸나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땐 그렇게 멍청했었다.


잠시 후, 교실에서는 엄청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퍽!퍽!퍽! 아익!,아윽!,어흑!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한 사람당 대략 열다섯 대 정도를 맞았던 것같다. 하늘이 노래졌다. 체육복 다시 가지러 온 게 이렇게 맞아야 하는 일인가 새삼 큰 두려움이 생겼다. 그때 일 이후로 학교에 무슨 물건이든 다시 가지러 간 기억은 없다.


더욱 멍청한 일은, 그렇게 맞고 나오면서도 우린 서로에게 왜 맞았냐고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친구놈들은 나도 청소당번이었구나 했고, 나는 그놈들도 모두 나처럼 체육복을 가지러 오는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했던 것이고, 선생님은 어쨌든 우리 모두가 한통속이라고 생각하셨다는 사실이다.


이 비밀은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동문회때에 친구들을 만나 추억을 되새기다 진상이 밝혀졌다. 선생님께는 달리 말씀드리지 않았다. 모두 껄껄 웃으며 엉덩이를 한 번씩 쓰다듬는 것으로 추억을 삼았을 뿐이다.


이 미묘한 오해의 현장에는 정의와 불의가 혼재되어 있다. 정의는 선생님의 측에서 정당한 것이고 폭력과 오해는 불의의 측에서 마땅한 것이다. 정의와 불의가 동시에 공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런 웃지 못할 촌극 같은 불편한 동거가 늘 있기 마련이다.


가족에게는 충실한 가장이 회사에 가서는 뇌물을 주거나 받으며 자기 자리를 유지한다. 학교에서는 충실하고 근면한 선생이 집에 와서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의외의 가면을 가지고 있다. 설교단에서는 굉장한 카리스마와 영성을 지닌 목사가 아무도 모르는 목양실에서는 음란물을 보거나 성추행을 하고 있기도 하다. 매년 사회에 수십억의 기부를 하는 거대 기업의 선한 자본은 노동자들로부터 착취에 가까운 고통을 주고 짜낸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면서 자기 자신의 정의에는 소홀하기도 하다. 또한 정의의 그 현장에 불의의 요소가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쪽을 선택한 것을 만족해하며 자기 합리화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이 불합리에 대한 하나의 중대한 지침을 내려주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38-42)


이 구절은 자칫 비폭력에 온건지상주의적 발언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간디가 아꼈다는 이 글귀는 실상 인도의 운명을 바꾸는 중대한 역할을 했고 폭력에 대한 개념을 재설정함과 동시에 저항의 의미마저도 새롭게 한 구절이다.


지금 이 구절처럼 우리의 저항은 폭력적이지 않으면서도 강력하고 온건하면서도 끈질긴 형태로 발현되고 있을까? 폭력의 특징은 단절성과 과격성에 있다. 그러나 참된 저항은 끈질기고 강력하다.


우리는 지금 조용히 세상을 바꾸기 위한 저항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색깔은 노란색이고 그들의 마음은 촛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또한 그들의 눈물은 모든 장벽을 넘는 눈물이 되어 시대의 정의를 위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목숨이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잊지 않고 그 아이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눈물이 마르지 않도록 한다면 말이다. 국민은 부정한 세력들의 폭력에 왼뺨을 내밀며 저항하고 있다. 우리의 자존감이 속옷을 빼앗으려는 부정한 세력에게 나체를 보이며 저항하고 있다.


과연 기득권자들과 정권욕에 빠진 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려는가는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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