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정] 제 딸들이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요!

조회 수 4121 추천 수 0 2014.06.16 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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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세의 백인 남성이 나를 찾아왔다. 응급이 아닌 상태에서 말이다. 워낙 소아 및 청소년 정신과 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응급 상황이 아닌 경우 내가 성인환자를 보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어른들은 본인이 느끼는 슬프고, 화난 심정들을 이야기해서 적절한 도움을 받기 쉬운데 비해서 두뇌 발달이 미숙한 상태에 있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은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아직 발달되지 못해서 문제 행동으로 나타나버리니 도와주기가 어렵다.

 

나를 찾아온 A라는 이 중년 남성은 "저는 닥터 정이 치료하는 두 대학생의 아버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두 딸이 모두 버클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녀들은 오랜 동안 “아버지도 우리가 갖고있는 주의 산만증세가 있는 듯하니 치료를 받으시라”고 권했다 한다.

 

딸들은 보통때에는 사랑이 많고 위트가 있는 아버지이지만 싫어하는 서류나 세금 관계의 일들은 질질 끌며 미루다가, 마지막 발등에 불이 떨어진 순간에야 할 수 없이 하는 것(매년 똑같은 반복을 하며), 차근히 생각을 하기 전에 행동부터 앞서는 아버지의 충동성 등등을 보면서...

 

그러나 미스터 A는 도움을 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저보고 서류 정리를 하라면 하루도 못 버티었을 거에요.” 그는 쇠를 녹이는 선반공(welding)으로 이름을 날렸단다. 무섭게 한 곳에 집중하는 Hyper Focus 성품 때문에 오히려 힘이 들고 섬세한 일들은 그에게 주어졌다. 물론 그럴 때는 누가 옆사람을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주위를 돌아볼 여유는 전혀 없었지만...

 

잘 나가던 그가 갑자기 힘든 삶을 살게 된 것은 일 년 전에 생긴 오토바이 사고 때문이었다. 양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으니 직장은 물론, 다른 외부 세계와도 단절이 되어 버렸다. 그는 자신의 주의 산만 증세를 훌륭하게 이겨나가는 방법을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배운 듯했다. 예를 들면 그는 하루의 시간들을 철저하게 계획해 놓아서 늘 생기 있고 재미있게 살아간다.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많은 청소년들이나 어른들이 할 일 없는 이런 시간에 사고가 나기 쉽다. 무언가 흥미있는 사건이나 일이 있으면 전두엽에서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고 따라서 상큼하게 주의도 집중되니, 그 일을 그만두기가 어렵다. 비디오 게임이 한 좋은 예이다. 운동 경기를 직접하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 관람하며 응원할 때에도 흥분되어 몸에서 도파민, 세로토닌, 엔톨핀 등 많은 뇌전파 물질들이 생성되어 몸을 흐른다. 그러니 게임이 그 몇 배로 즐거워질 수밖에...

 

그러나 이런 시간을 메울 계획이 없다면 이들은 주위의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예를 들어서 청소년들이 모여서 담배, 술 또는 다른 마약을 시험해 보거나 어른일 경우 친구를 따라서 도박장에 가기 쉽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흥분하고 즐거워하다보니 도파민이 더욱 더 쏟아져 나오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며 그 자리를 떠날 수 없게 된다.

 

이런 것을 미리 생각하고서 미스터 A는 나를 찾아왔다고 한다. 집안에 일 년간 있다 보니, 너무 무료한데 책을 읽기에는 너무나 주의 집중이 어려웠단다. 앞으로는 몸이 부실해져서 선반공 일을 못할테니 다른 방면의 공부를 해야 될텐데...

 

이런 아버지를 격려하면서 나와의 약속 시간을 잡아준 것도 딸들이란다. 나이가 들면 자녀와 부모 사이의 역할이 뒤바뀌어서,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경우가 많다지만 이 딸들은 이번에 버클리에 갓들어간 신입생과 삼학년의 재학생들이다. 자신들의 매일 일정도 소화하기가 힘든 시기이다.

 

“아빠, 비록 우리가 갖고 태어난 이 증상이 집안의 유전 현상 때문이라고 해도 우리는 치료를 받으면서 이겨냈어요. 그리고 꼭 성공할 거에요. 그러니 아빠도 닥터 정을 찾아가 보세요.”

 

아무리 딸들의 말이 었었더라도 50 중반의 나이에, 더구나 다친 다리를 절룩이면서 온 이 노신사도 딸들 못지않은 기개를 보였다. 약을 복용해서라도 자신이 새로 가져야 할 직업 분야의 새로운 공부를 해보려는 그의 의욕에 넘친 눈동자가 빛난다.

 

어디에선가 이 소식을 듣고서 "아빠 만세"를 외칠 나의 두 대학생 환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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